2020년 치매극복의 날 기념 치매극복수기공모전 '대상' 입상작입니다.

제목 : 벚꽃과 함께 사라진 내 청춘

1990년 3월 말 벚꽃이 찬란하던 어느 날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남편의 나이는 40살, 회사에 출근했는데 오후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집에 왔다. 그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경희대 병원을 갔다. 머리가 너무 아파 잘 걷지도 못해 경희대 병원을 가니 뇌졸중이라고 했다. 한달을 입원 치료하고 집으로 퇴원 후 6개월을 요양하였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업무에 적응을 할 수 없어 그만두고 집에서 쉬었다. 처음에는 뇌혈관과 관련된 병으로 치료하던 중에 쉬면 나을 줄 알았는데 정신적인 질병까지 따라왔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TV를 보면서 수시로 울고 웃고 갑자기 새벽 4시에 집에서 나가 아침 9경에 들어오는 이상한 행동과 어느 날에는 아파트 4층에서 뛰어 내리겠다고 해서 119와 경찰이 오기도 했다. 때때로 반복적으로 쓰러져 119로 실려가던 어느 날 한양대에서 정밀 검사하면서 뇌종양이라며 빨리 수술해야 한다 해서 수술 후 검사 해보니 난생 처음 들어보는 베체트라는 병, 면역이 떨어지는 병 몸에 다니면서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란다.

평소에 피부가 그리 좋지 않아 발진이 나기도 하고 입안이 허물어 음식을 먹을 때 불편한 그런 증상 외에는 별다른 것도 없었다. 회사일이 힘들고 고달파 그냥 피로한 거라 생각하고 지내던 차에 갑작스럽게 발병된 뇌졸중 등 여러 가지 증상들이 다 베체트병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베체트병으로 인한 치매는 정신적인 감정변화가 매우 다양하다 한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제대로 걷지도 못해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아침에 일찍 아파트 입구에 경비실 자리를 차지하고서 하루 종일 문지기처럼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 안한다며 훈계하거나 욕하는등 온갖 참견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 수차례 민원이 들어왔다.

심지어는 아파트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이 삐뚤어져 마음에 들지 않거나 주차구획이 아닌곳에 서있거나 하면 지팡이로 차 번호판을 쾅쾅 두드리면서 난리를 쳐댔다.

환각을 보이며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먼저 식사를 드려야 한다며 밥 먹을 때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등 너무나 나를 정신적으로 지치게 했다.

몸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사람이 치매로 사리 분별을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니 자식들한테도 면목이 없었다.

내 나이 한창때인 36살......살림만 하던 내가 자식들과 남편 병수발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새벽부터 나가 보험계약을 위해 뛰어다니다가도 남편 식사 챙기려고 시간 맞춰 집에와 수발들고 씻기고 다독이는 순간 순간, 이 악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시절, 남편은 매일 같이 하루도 편하게 지내는 날이 없이 온통 사고만 일으켰다.

그러던 어느 날은 본인이 이렇게 살아 머 하냐며 나가 죽겠다며 나가서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한밤중에 돌아온 남편은 온통 흙투성이에 다 찟어진 옷을 걸친 채 경찰과 함께 돌아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지팡이 짚고 걷다가 넘어지고 걷다가 넘어지면서도 어딘지 목적지도 없이 마냥 걸어가다가 고맙게도 주변 사람들이 신고해서 경찰이 모시고 왔다며 잘 돌봐주라는 말을 해주고 갔다.

그 무렵부터 남편은 덜덜 떨면서 걸음걸이가 점점 힘들어지더니 급기야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주저앉아 버렸다. 병원에서는 이제는 베체트병의 악화로 관절에 염증이 너무 심해 활액막이 염증으로 망가져 버렸다며 방법이 없다 했다.

육체적으로는 점점 걷기도 힘들어지고 근력도 약해지면서 경련을 일으키며 점점 머리가 망가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리도 착하고 과묵하던 남편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면서 본인이 밥을 먹고서는 기억못하고 이 여자가 남편 밥도 안주고 굶어 죽이려 한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댔다.

방바닥을 기다시피 하면서도 나에게 온갖 욕을 해대면서 본인이 하고싶은 막말을 해대면서 감시를 하기 시작했다.

수십여가지의 독한약을 10년 넘게 먹다 보니 관절뼈가 녹아 내리듯 다 닳아버려 걷지를 못하고 앉아서 기어다니더니 나중에는 걷지도 못하고 침상에 누워서 현재까지 대소변 받아내며 간병한 지 지금 어언 30년이다.

그동안 안해본 일 없이 병에 좋다는 것은 다 구해 먹여보고 좋다는 병원 다 찾아보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진행되는 증상은 막을 길이 없었다.

남편의 병은 가족들의 삶을 다 바꿔 놓았다. 한창 일하고 자리잡아야 할 젊은 나이에 병마에 스러진 남편을 병구완하기도 벅찬 나날 인데다 경제적으로 나라도 벌지 않으면 어린 자식들을 부양할 수 없는 현실에 아무도 주변에서 도와줄 수 없었다. 친정가족들도 시댁 식구들도 얼굴보면 힘내고 다 잘될거라는 말만하지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대책은 도와주지 못했다. 그나마 2007년도부터 장기요양등급제도가 생겨서 나라에서 보내주는 요양보호사나 시설에 입소 가능한 혜택이 생겨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내가 간호하면서 보험회사 다니면서 생활하고 보니 너무 힘들고 감당이 안돼 요양원으로 갔다.

하지만 남편은 요양원에 적응하지 못했다. 한창때 남편의 나이 50대에 요양원에서 생활하는게 힘들었던 것인지 소동을 피우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날 꺼내주라며 감옥에 가둬놓고 마누라가 도망갔다며 주변 사람들을 시시때때로 괴롭혀 버티다 버티다 급기야는 요양원에서 3개월 만에 집으로 데리고 가라는 것이다. 잠을 안자고 시끄럽게 하니 더 이상 못본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남편이 너무 약속하고 원망스러웠다. 같이 죽어야 하나.. 수차례 갈등하고 원망했다.

눈에 밟히는 자식들만 아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종일 누워 요양원에 보냈던 나를 욕하고 난동을 부려댔다. 급기야는 몸이 않좋아지는 이유가 내가 주는 약 때문이라며 모든 약을 거부했다.

주변 이웃들은 고생한다면서 왜 요양원에 안모시냐며 되려 별 도움도 안되는 소리들만 해 내 가슴을 더 찢어지게만 했다.

직장다닐 여력도 없었다. 매 24시간을 수발들어야 하는 남편간병을 위해 가족 요양제도가 있다고 해서 죽기 살기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손에 받은 얼마되지 않은돈을 쪼개 생활하고 자식들이 이제는 커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들도 살기 어려우면서 어려운 살림에 보태라고 생활비를 준다.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남편이 제일 미워하는 사람은 부인이다. 나만 보면 머리채를 쥐고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면서 정말 아이들만 아니면 죽고 싶었다. 아들, 딸 저것들을 두고 가려니 더 나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을 버티고 견뎌야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난 견뎌내야만 했다.

2012년, 주변 사람들의 조언으로 안내받은 성동구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해 상담받고 검사를 받고 치매 등록을 했다.

센터로부터 와상으로 누워있는 남편을 위해 조호물품을 받을 수 있었다. 누워지내는 남편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하는 사람이지만 헤아림 가족 교육을 받으면서 그동안 치매라는 병에 걸려 나를 정신적으로 압박하고 힘들게 했구나...... 새삼 깨달으며 잘해주지 못하고 화만 냈던 나에게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황폐해진 내 마음을 지지해주고 다독여주며 같이 울어주는 가족들이 늘어났다.

치매 센터에 다니게 되면서 나는 즐거울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같은 마음으로 울어주는 헤아림 식구들과 이것저것 참여할 수 있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남편에 대한 증상에 대해 주고 받으면서 푸념도 하고 신세 한탄도 하면서 맞장구쳐주는 치매 가족들과 어울리며 지낸 지 벌써 9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우쿨렐레도 배우고 만들기도 배우고, 이것저것 나들이도 가고 마음에 맞는 가족들과 치매센터 봉사도 해왔다. 2018년, 2019년에는 서울시 치매 극복의 날 행사와 성동구에서 주최한 치매극복 박람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발표도 하는 값진 경험도 할 수 있었다.

3년전부터는 치매가족을 위해 1년에 한번씩 돌봄가족 휴가라며 여행도 보내주는 제도가 있다며 성동구 치매 센터에서 신청도 해주는 등 나라에서 치매 가족이 받을수 있는 모든 내용에 대해 세세하게 알려주고 도와주는 고마운 도움의 손길이 있어 감사하면서 지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제도들이 다양하다는걸 실제로 혜택을 받고나니 나를 많이 고통스럽게 하던 남편덕에 지금은 호사도 누린다 하면서 감사함을 느끼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남편은 너무 오랜 세월 누워서 생활하다 보니 이빨도 다 빠지고 먹는 것이 힘들고 가래도 많이 생기고 해서 작년부터는 내가 집에서 모든 음식을 믹서에다 갈아서 죽으로 챙겨주고 있다. 씹지 않고 죽으로 갈아주면 영양이 부실해질까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좋은 먹거리 찾아 시장도 가고 시골 아는 분들이 정성껏 키워준 먹거리들로 골라 소고기 국도 우려내어 다양하게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욕창도 없이 피부도 뽀송뽀송하고 얼굴이 반들반들해서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환자같지 않다며 칭찬을 해준다.

누워서 대소변을 보니 냄새도 무척 심해서 늘 아침 저녁으로 씻겨 줘야 한다.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아프지만 요령이 생겨서 이제는 거의 눈감고도 씻겨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전동침대가 있어 매번 밥먹을 때도 힘쓰지 않고 일으켜 먹이고 자세 바꿔주기도 편해져 예전보다는 남편 병구완하는게 편해져 감사하다.

남들은 왜 그런 남편을 요양병원이나 시설에 입소 안시키냐고 핀잔주기도 하고 걱정해 주기도할 때마다 나도 가끔은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고 “내가 이제 30여년 간 이렇게 보살피고 간병했는데 이제와서 남편을 보내면 내맘이 허전해서 안된다”며 마음을 다독이고는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남편 상태 확인하고 남편의 식사를 챙기면 남편은 늘 기독교 라디오 방송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는 거의 말수도 없어져 말없이 눈으로만 내 모습만 쳐다보며 내 일거수 일투족을 쫓아다닌다. 마치 갓난아이 같은 모양이다.

한평생 같이 붙어 있다 보니 이젠 눈빛만 봐도 남편이 대변이 마렵구나... 배가 고프구나...짜증이 났구나 하는 눈칫밥도 늘었다.

때로는 목욕탕에서 남편에게 “당신 언제 죽어서 나 편하게 해줄 거야? 얼렁 죽어~” 그러면 남편은 눈으로는 울면서 허허허 하고 웃어 넘긴다. “ 나랑 오래오래 살 거야?” 그러면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을때마다 남편이 밉다가도 이뻐보인다.

간간히 교회나 센터 가족들, 주변 이웃들이 나에게 30년을 모시는 간병 노하우가 무어냐고 물어본다. 반 이상은 나도 의사선생님이 되어 남편에 대한 것은 다 알수 있을 것 같다 해도 언제 남편이 하늘나라로 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남편과 이렇게 사는 순간이 보람되고 행복하기도 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을 주신다고 하는 말처럼 내가 남편을 지금까지 감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센터에서 치매극복수기에 참여해보라고 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 눈물이 앞서 한사코 마다했었다.

늘 지켜주고 지지해주는 우리 아들과 딸이 옆에 있고 남편이 살아 있다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과 내가 지나온 이야기를 쓰기가 부끄러웠다.

예전에 우리 귀한 손주가 8살 때 나에게 할머니는 왜 누워만 있는 할아버지를 이렇게 잘해주고 사냐며 자기는 만약에 아빠가 그렇게 누워있으면 쫒아낼거라 했다. 할머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가보다며 할머니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다며 울던 우리 손주... 그 어린애가 벌써 다 커서 할머니 심정을 헤아려주다니..

갑자기 눈시울이 핑돌면서 손주에게 인정 받고 나니 세상 부러운게 없어졌다.

내게 주어졌던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순응하니 현재 모든 것이 감사하고 남들보다 조그마한 일에서도 행복이 넘쳐 오른다.

아마 남편이 없다면 이 행복이 이렇게 몇 배로 차오르지 않을 것 같다.

주님 부디 건강하게 주님께서 데려가실 그날까지 내가 감당할수 있는 건강을 허락해주세요. 오늘도 난 이렇게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한다.